대구가정폭력상담소

 
작성일 : 19-10-18 11:12
[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④ 37년 가정폭력에 범행…정당방위 아닌 이유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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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절대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로 그 결과가 매우 중하고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는 중대한 범죄로 피고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부가 되어 수십 년 함께 살았던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유 없는 살인은 없었다. 길게는 35년 징역형부터 짧게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까지 다양한 선고가 내려졌다. 생명을 빼앗았다는 중대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그러나' 다음은 저마다 차이가 있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그러나' 이후에 주목했다. 결혼과 혼인신고를 거쳐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살해하는 비극, '부부 살인' 사건을 판결문을 통해 살펴봤다. 극단적인 결과가 빚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판결문에 서술된 건조한 언어를 통해 이면을 들여다보고 비극을 피하고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을지 고민했다.

① 71% 배후에 가정폭력 있었다
② 남편은 15.8년·아내는 7.6년…왜?
③ 58년 함께 살다 '황혼 살인'
④ 37년 시달리다 범행…정당방위 아닌 이유는

● 수십 년 가정폭력 피해...칼에 찔리기까지 했으나

2017년 3월 23일 새벽, 강원도 삼척시의 한 아파트. 61살 김 모 씨가 지인들과 모임 후 귀가하자, 남편은 김 씨의 머리채를 잡고 넘어뜨리고 유리잔 등을 집어던졌다. 여러 번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장식용 돌을 들어 남편의 머리를 여러 번 내리쳤다. 남편은 2시간 여 뒤 사망했다.

김 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결혼 생활 37년, 신혼 때부터 남편은 폭력을 행사했다. 김 씨는 남편이 휘두른 칼에 가슴을 찔리고 베인 일까지 있었다. 이번 범행에 대해 김 씨와 변호인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당해 왔고 사건 당일도 술 취해 들어온 김 씨를 남편이 폭행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저항하다 살해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회 통념상 방위행위로써의 한도를 넘었고 김 씨가 공포심보다는 분노를 표출했다는 진술 내용을 근거로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가정폭력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음주에 의한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인정되나 범행 당시에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김 씨의 범행을 살인 양형기준의 제1유형(참작동기 살인)으로 보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김 씨는 항소했으나 항소심 결과는 1심과 같았고 대법원에서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살인, 정당방위 인정받을 수 있나

형법에서 규정하는 정당방위는 다음과 같다. 1항은 정당방위에 대해, 2항은 정당방위에 포함되는 과잉방위에 대한 내용이다.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김 씨처럼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이나 아내를 살해한 경우, 정당방위에 해당할까, 아닐까.
<마부작침>은 최근 5년 간 '부부 살인' 사건 판결문 100건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건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했다. 먼저 '아내 살해' 66건에서는 정당방위를 주장한 경우가 한 건도 없었다. '남편 살해' 34건, 즉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거나 사망케 한 사건에서만 정당방위 주장이 나왔는데 위에 설명한 김 씨 사건을 포함해 모두 9건이었다. 26.5%다.

9건 중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건 단 1건도 없었다.

정말 없을까.

<마부작침>은 애초에 1심 판결문만을 분석했는데 1심과 달리 2심부터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건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를 이용해 2014년부터 2019년 7월까지 '가정폭력', '살인', '폭력', '정당방위' 등의 키워드로 2심 판결문을 검색해 살펴봤더니, 피고인 측이 정당방위를 주장한 판결문 3건이 더 나왔다. (이 중 2건은 2심에서만 정당방위 주장했고, 1건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1심 판결문을 대법원이 비공개 처리했다. 그래서 '부부 살인' 사건 100건에는 빠져 있다.) 이들 사건 역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남편 살해 피학대 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에 따른 형법적 대응방안>(2010)을 보면 분석 대상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남편 살해 사건 70건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한 건 37건, 과잉방위는 33건에 이른다.(중복 포함) 이 연구에서 정당방위 주장 사건이 52.9%인데 <마부작침> 분석에서는 26.5%로 크게 줄었다. <마부작침> 분석은 2014~2019 사건이기 때문에 최근 사건일수록 정당방위를 덜 주장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당방위 주장이 한 번도 받아 들여진 판결이 없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현재 부당한 행위를 당하는지,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법원의 논리는 한결같다. 형법의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1) 현재의 부당한 침해, 2)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 3)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현재성과 상당성에 '남편 살해' 사건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 내내 가정폭력에 당해왔더라도, 사건 당일 폭행이 벌어졌더라도, 그게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라는 논리이자 다른 방식의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이자, 가정폭력 사건을 다수 변호했던 이명숙 변호사는 "20년 넘게 수없이 논의했지만 가정폭력 피해 아내의 정당방위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면서 "어느 한 죄에 대해서만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데서 더 이상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가정폭력이 아니더라도 14건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김병수,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방안, 2014)

법을 고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가정폭력 행위자가 가정폭력 범죄를 범하거나 범하려고 할 때 이를 예방하거나 방위하기 위한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인정하도록 하자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정춘숙 의원이 지난 2017년 12월 발의했다. 발의 이후 1년 4개월이나 걸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법안이 상정됐으나 더 이상 논의에 진전은 없는 상태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가 끝날 때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이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조 (목적)이다. 21년 전인 1998년 이 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함께 시행됐다. 여성계의 오랜 노력이 일궈낸 성과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데 중점을 둔 나머지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는 목적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의전화 최선혜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어떻게 해서든 건강한 가정을 회복해야 한다는 시각이 여성들을, 아니면 가해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국가가 계속 방조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살인자로 낙인찍는 게 가정폭력을 제대로 해결하는 태도인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화난다고 때리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하는 교육을 아주 어려서부터 모두 동참해서 해야 하고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가정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중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김민아 디자이너
이유림 인턴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470236&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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